현제나이 31살 어릴때부터 주말이면 동내아이들과 어울리기보다.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하는것을 더즐거워했다..
고2때이던가 아버지깨서 하시던사업이 부도나시고 이리저리 방황을하시던아버지
그때는 아버지깨서 왜그리 어깨가 처졌는지 이해할수없었다...
그저 부도라는것이 사업을 정리하고 다른일을 찾는다는 의미로밖에 우리집은 나 국민학교
다닐때부터 자가용이있어 묻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샀고 그것이 당연한 행복으로 만느껴졌다.
그리고 당연 낚시를 가면 이른아침 아버지의 차를 타고 드라이브가는 것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고2여름 아버지는 그당시 방학중이던 나를대리고 춘천행 기차에 몸을 실으셨다..
그 당시 춘천시내(터미널근처)에 있는 막국수집에서 막국수를 사주시고는(1년전인가 가보았는데 그자리에 막국수 집이 그대로 있었음 가격도 그대로) 버스를 타고 인람리라는 마을 정류장을 지나 물가로 들어갔다.
신포리로 가면서 저건너편에가서낚시하시면 좋겠다 하시던 아버지께서 그리로 가는길을 버스로
알아보시고 나를 대리고 가셨던거다...거기에는 택시운전하시는 아저씨(아버지의 이종사촌)일행분들이
미리 들어와 장박을 하고계셨고 오늘 인람리조행기에서 본 오래됀 소나무밑에 6~8분이 졸로리 대를 드리우고
계셨다. 지금은 70을 바라보시는 나이 낚시같이 가실래요 하면 이젠 힘들다 하시며
마치 저 놈이 뭔 생각으로 장가도 안가고 저리 주말이면 싸돌아 다니냐!!!!  
나 젊을때도 그랬지.....하시는 듣한 눈빛으로  홀로 낚시가는 나를 내보내신다...
대학을 입학한후에도 군대를 같다온 후에도 인람리를 몇 번이고 찾아갔다...
그렇게 많이 낚시를 다녔어도 혼자힘으로 낚시터까지 찾아갈수있는 곳은 인람리 뿐이었다.
청주 음성 안성 충주 진천 일죽 화성 대호만 양평......그렇게 국민학교 때부터 다니던곳 절로고개가 숙여진다 .....
그렇게 행복한 소년기를 보냈어도 한번도 내가 행복한 줄 몰랐고 철이 들고서야
아버지께서 마지막 자연과 사람은 땔레야 땔수가 없다 하시며 아버지가 젊은 시절 낚시를 하던
그방식대로 인람리로 나를 대리고 가셨던 거다 낚시터에 앉아 몇번이고 곱십었다 아버지 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지만 지금생각하면 아버지께 감사하는 맘이 더크다 지금은 용돈벌이 하시며 가족들과 벽을 두고 사시지만
언젠간 다시 웃을수있는 그런날이 올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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